블로그 이미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젊은 날, 젊기에 고민이 즐겁다. by 하늘치


작은 돌


꽃샘 추위 때문인지.. 꽤 쌀쌀한 날씨가 며칠간 이어지고 있네요.
그래서 읽어보면 따뜻한 느낌이 오는 이야기 하나를 골랐습니다.


칼릴 지브란 오, 가슴이여. 누군가 그대에게 육신과 마찬가지로 영혼이 언젠가는 소멸되어 버린다고 말한다면, 그에게 대답하라. 꽃이 시들지만 씨앗은 남아 있다는 것을. 이것이 신의 법칙이라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공동묘지가 무섭고 우울한 장소일 수가 있다. 그곳에 가면 고통스런 기억과 다하지 못한 일들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미국 인디애나 주의 시골에서 성장기를 보낼 때는 공동묘지가 내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아버지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공원묘지들과 사설 묘지들을 돌보는 묘지 관리인이었다. (미국의 공동묘지는 대부분 공원처럼 잘 가꾸어져 있다.)

아버지는 러시아에서 살다가 전쟁이 끝난 뒤 청년 시절에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친구들의 소개로 역시 이 무렵에 이민을 온 엄마를 만나 결혼을 했다. 어찌어찌하다가 나의 부모는 인디애나의 작은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그곳에서 아버지는 정원사 일자리를 구했다. 아버지는 평생동안 열심히 일을 했으며, 그 결과 아버지의 작은 사업은 서서히 커 나갔다. 아버지는 그 지역의 개인주택의 모든 잔디뿐 아니라 부근에 있는 모든 공동묘지의 관리를 맡았다. 아버지는 일터에 갈 때 종종 나를 데리고 가곤 했다.

아버지가 그 직업을 택한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평생동안 빈약하기만 한 영어 실력 때문이기도 했다. 정원을 가꾸고 조경을 하는 일은 폭넓은 대화 기술이 없이도 잘 할 수 있는 일에 속했다. 또한 아버지는 아름다운 공간을 창조하는 일을 좋아했다.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자연의 고요한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아버지를 따라 공동묘지를 놀러 가는 것을 좋아했다. 내게는 공동묘지가 조용하고 인생의 많은 이야기들로 가득 찬 신비로운 장소였다. 무덤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나는 상상 속에서 그려보곤 했다. 한 사람의 이름과 그가 살았던 연대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고 어떤 가정을 가졌는가에 대해 가능한 시나리오를 상상하곤 했다. 또 나는 인디애나 시골 지방에서 죽은 그 사람들을 온갖 종류의 신비로 뒤섞곤 했다. 어떤 무덤은 다름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고 장렬하게 전사한 오랫동안 잊혀져 온 왕이나 영웅의 무덤이었다. 그리고 어떤 때는 그 무덤이 일찍 세상을 떠난 한 연인의 무덤인 것으로 나는 상상했다. 그래서 그 연인은 마침내 더 좋은 세상에서 상대방 연인과 영원히 하나가 되었다고.

내 어린 시절의 모든 상상력이 공동묘지에서 분출되었다. 왜냐하면 내 자신의 실제 삶은 고통스러우리 만치 극적인 사건이나 흥분되는 일들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십대가 되었을 때는 인디애나 시골에서의 안락하고 조용한 삶에 점점 따분해진 나머지 내가 상상해 낸 시나리오들은 더욱더 내 자신의 도피 수단이 되어 갔다.

부모님은 점점 커져가는 나의 좌절감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고 나는 확신했다. 내가 보기에 두 분은 평생 자신들이 놓여진 상황에서 기계처럼 일하면서 살아 온 무지한 이민자 부부였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두 분이 미국에 도착하기 전에 살았던 삶에 대해서는 전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내게는 내 부모가 단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로만 비쳤다. 두 분은 정착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한 장소에 정착해 살았다. 그들에게는 꿈도 없었고, 현재의 그 모습 그대로인 것말고는 다른 어떤 욕망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많은 것을 꿈꾸었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내 대학 시절은 온갖 시도와 반항으로 소란스럽기 짝이 없는 날들이었다. 나는 세상에 내 자신의 개인적인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길들을 찾았다. 나는 뚜렷한 인간이 되고 싶었고, 내 자신을 중요하고 의미있는 존재로 느끼고 싶었다. 내 부모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왔지만, 나만큼은 내 젊은 가슴의 모든 열정을 갖고 진정으로 삶을 경험하기를 갈망했다.

대학을 다니느라 내가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부모님은 눈에 띄게 늙어갔다. 어느 겨울 방학 때, 나는 잠시 집에 다니러 갔다.

세월은 아버지의 얼굴에 깊은 흔적을 남겨 놓았고, 아버지는 전처럼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손에 닿는 흙의 감촉을 그리워했다. 그리고 또 다른 것도 그립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 내가 공동묘지에서 환상에 젖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버지는 자신의 일을 하셨었다. 잔디를 깎고, 가지를 치고, 나무를 심어 공동묘지를 아름답게 만들었다. 그리고 매번 우리가 그곳을 떠나기 바로 직전, 아버지는 픽업 트럭의 짐칸에서 작은 조약돌들을 한줌 집어들었다. 이 돌들을 아버지는 몇몇 무덤들의 묘석 위에 하나씩 조심스럽게 얹어 놓았다. 나는 아버지에게 왜 그렇게 하는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한번도 들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그냥 아버지가 하는 일의 일부분으로만 받아들였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버지에게는 무척 중요한 일인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 겨울 방학 때 내가 집에 내려가자, 아버지는 내게 부탁을 하나 했다. 아버지는 나더러 트럭을 몰고 그 공동묘지로 가서 몇 군데의 무덤 앞에 조약돌을 하나씩 놓고 오라고 부탁했다. 어떤 이유에선지 아버지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고, 그 날 꼭 그 일을 해야만 했다.

그 무렵 나는 십대의 반항기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을 시기였다. 그래서 나는 두 말 없이 아버지를 위해 그 일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사실 내 행복한 어린 시절의 순간들이 깃든 그 장소를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싶었다.

그 공동묘지에 도착했을 때 나는 아버지가 일러 준 무덤들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차를 세웠다. 그 순간 나는 그곳에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추운 11월 바람 속에서 모자도 쓰지 않은 한 부인이 내가 조약돌 하나를 놓아두기로 되어 있는 어떤 무덤을 찾아와 있었다. 내가 돌을 놓으려고 몸을 숙이는 순간 나는 그녀의 부드러운 속삭임을 들을 수 있었다.

"고마워요."

그 때 나는 그 무덤에 적힌 죽은 날짜가 바로 11월의 그 날인 것을 눈치챘다. 무덤은 15년쯤 전에 죽은 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한 어린아이의 무덤이었다. 나는 그 부인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오십대쯤 되어 보였고, 얼굴에는 주름이 꽤 있었다. 그녀의 표정에서 슬픔을 예상했으나, 그 대신 조용한 기품과 고요히 받아들이는 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내 아들의 무덤이라오. 그런데 아버진 어디 가셨나요? 그분이 늘 그 조약돌을 올려놓곤 했는데."

나는 너무도 놀라서 대답을 하는 데 한참이 걸렸다. 아버지가 건강이 좋지 않아 나를 내신 보내 이 돌을 올려놓으라고 했다고 나는 설명했다. 그리고는 아마도 이것이 아버지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인 모양이라고 덧붙였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그녀가 나의 아버지를 알고 있으며, 이 작은 행위가 아버지에게 매우 중요한 일임을 인정하는 투였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이 조약돌의 의미를 물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난 댁의 아버지를 잘 알지 못해요. 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분의 성품을 안다오. 그분의 친절한 행동은 그 어떤 것보다 내 삶에 많은 의미를 가져다 주었다오. 내 아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자주 이 무덤을 찾아왔다오. 무덤을 찾아올 때마다 묘석 위에 돌을 하나씩 얹어 놓는 것이 우리의 관습이라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이곳에 묻힌 사람이 잊혀진 존재가 아니라, 여전히 사람들이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한 것이라오. 그러다가 우리는 이 마을에서 멀리 이사를 되었다오. 너무 많은 고통스런 기억들......우리 모두 이사를 갔지요. 가족들, 친구들 모두. 아무도 무덤을 방문할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다오. 하지만 댁의 아버지가 이곳에 올 때마다 매번 이 무덤에 돌을 하나씩 올려놓아 주었어요. 내가 매번 이곳을 찾아올 때마다 나는 그 돌을 보았고, 그것은 언제나 나를 위로해 주었다오. 댁의 아버지는 우리 가족에게 낯선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한 엄마의 가슴에 담긴 고통을 달래 줄 줄 아는 그런 분이라오."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날려 얼굴을 가렸다. 잠시 동안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부인이 손을 뻗어 내 팔을 잡았다.

"아버지에게 오늘 여기서 나를 만났다고 꼭 전해 주구려."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몸을 돌려 떠나가 버렸다.

낡은 픽업 트럭에 올라앉아 몸이 덥혀지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무덤에 돌을 남겨 두는 것은 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러시아에서 배운 풍습일지도 오르고, 아니면 이곳 인디애나 지방에서 아까 그 부인 같은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고 배운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든,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가슴을 위로하고 어루만지는 행동이었다. 그 작은 조약돌이 한 아이의 무덤뿐 아니라 아이의 엄마의 가슴에도 놓여졌던 것이다.

낡은 트럭의 히터가 작동을 한 모양인지 갑자기 나는 몸이 훈훈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내 온 존재를 파고드는 온기였다. 나는 트럭에 기어를 넣고 집으로 향했다.

- 마샤 아론즈


(출처 : 대학교 다닐 때 들었던 '인격론' 수업~ ^^;)

Comment 0 Trackback 0
Top

prev 1 ··· 284 285 286 287 288 289 290 291 292 ··· 350 next